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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의 개념과 역사

오과일 2021. 5. 19. 07:37

동물권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법적 권리로 대개는 동물들의 인지, 감정, 삶의 복잡성이나 신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고통과 쾌락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동물권의 개념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각 시대의 철학적, 종교적 사상의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동물권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는 않지만, 서구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꽤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동물권의 역사와 전개과정을 살펴보려면 서구의 사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이성에 의하여 지배받는 세계를 가장 이상적이라 여겼다. 따라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마땅하며 인간의 한 수단으로써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스 사상과 함께 서양사회의 중심을 이룬 유대교와 기독교는 인간과 동물의 종속적 관계를 인정하며, 동식물을 다스리는 인간의 지배적 위치를 전제함으로써 서구사회에 인간 중심주의적 사유 방식을 뿌리내렸다. 이러한 기독교의 입장을 대표하고 있는 신학자로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다. 아퀴나스는 죄의 유형을 신에 대한 죄, 자신에 대한 죄, 이웃에 대한 죄로만 나눌 뿐 동물에 관한 죄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동물에게 저지르는 악행이 사람에 대한 악행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였고, 아퀴나스의 이러한 사유 방식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사상가들에게 계승되었다.

인본주의를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을 영혼이 없는 자동인형, 기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을 위해 동물을 함부로 해부하거나 학대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였다. 동물이 학대를 당하거나 위협을 받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몸부림치는 행위는 고통 혹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자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동인형처럼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해는 사람들이 동물을 이용하고 해를 입힐 때 죄책감을 들지 않게 해주었다. 칸트 역시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진 않았으나, 인간의 악한 본성을 강화하지 않기 위해 동물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동물이 사회 내에서 도덕적 권리나 지위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만약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행위가 인간의 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무자비한 동물실험이나 동물 학대는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계몽시대에 들어서 과학기술의 진보와 동물실험의 확산은 동물에 대한 시각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동물 해부를 통해 동물과 인간이 생리학적으로 차이가 없고 동일한 감각기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는 데카르트와 같은 기계론자들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자비의 법칙으로 동물들을 관대하게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 관대한 사용이란 표현은 당대 인간사회의 동물에 대한 태도를 잘 대변하였다. 사람들은 계몽시대에 갖춰야 할 실천적 지식과 예의 및 덕성을 함양하면서 동물에 대해서도 잔혹성과 비인도적 행동을 줄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은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서 한 개체가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 인간은 그 개체에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동물들이 그들 스스로 이익과 권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이성이 아닌 이러한 쾌고감수능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들에 대해 이익을 함부로 배제하는 일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19세기 들어 영국에서는 동물을 이유 없이 학대하거나 잔혹한 행위를 가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안이 하원에 제출되기도 하였다.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제레미 벤담과 그 결을 같이 하며, 현대의 동물권에 대한 논의를 한층 더 발전시킨 인물이다. 동물권이란 말이 정식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론(Animal Liberation)을 발표한 이후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 책은 그동안 당연시 여겨왔던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렸고, 이후 여러 동물권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채식주의도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그에 의하면 동물이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 포함할 수 있으며, 어떤 개체가 특정 종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개체를 차별하고 지배해도 된다는 것은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는 종차별주의적 행동이다. 그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동물보다 상위에 위치하여

있다고 간주하는 종차별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이를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시인한다. 현대인들은 동물들의 본성에 무지할 뿐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농장에서,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애써 알고 싶지 않아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음식으로 마주하는 한편, 집안에 개와 고양이들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상반된 태도를 형성한다. 피터 싱어는 동물에 관한 문제가 인간 문제에 앞설 수 없다는, 혹은 인간의 편의에 따라 동물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이 공고한 믿음에 과연 동물의 고통이 인간이 느끼는 고통보다 덜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철학자들의 사유 변화와 맞물린 동물 해방 운동의 지지기반 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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