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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윤리에 대한 공리주의적 관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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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윤리에 대한 공리주의적 관점

오과일 2021. 5. 22. 07:57

싱어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잘못인 이유를 확인하고 이를 동물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그는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가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인간이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왜 인간이 도덕적 지위를 갖는지 물은 다음에 그 이유를 동물에도 적용해 보는 방식으로 논증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동물과 인간을 차별 대우하는 우리의 관습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인간들 사이에 차별을 반대하는 평등의 원리에 대해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종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것은 사실적 기술(description)이 아니다. 각 개인은 서로 다른 도덕 능력, 지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평등하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평등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에 관한 주장은 실질적 평등에 기초하지 않는다. 싱어는 인간 평등의 원리가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며,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prescription)이라고 말한다.

평등의 원리는 성별이나 인종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지적, 도덕적 능력을 기준으로 한 차별은 정당한가? 그렇지 않다. 각 개인의 IQ에 측정 가능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IQ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 실제 각 개인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는 능력의 정도에 따라 그들의 필요와 이익을 서로 다른 정도로 배려하는 대우는 정당하지 않다. 이때 평등은 두 집단 간 동등한 대우나 평등한 처우, 동일한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평등의 원리는 평등하게 배려할 것을 요구한다. 여자에게 낙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남자에게도 낙태할 권리를 요구할 수는 없다. 다만 평등한 배려는 각 존재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르게 처우(treatment)하고 서로 다른 권리를 가지도록 요구한다. 각 존재에게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에 따라 배려의 내용이 달라질 뿐,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평등은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할 것을 근본 전제로 여긴다. 이는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이나 이익에 대한 고려가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떠한 능력을 지녔는지 등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존재의 이익을 고려한다는 기본 요소는 모든 존재에게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그들이 어떤 자질을 갖추고 있든 그것이 권리의 척도가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상대방을 수단으로 취급하거나 착취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가 호소해야 하는 원리이다.

성차별주의(sexism)나 인종차별주의(racism)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이유는 이익 평등 고려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익 평등고려의 원칙(the 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s)은 윤리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은 개인적이고 파당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동일한 이익에 대해 동등한 비중을 두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X가 백인이고, Y가 흑인이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X와 Y의 동일한 이익에 동등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 싱어는 더 나아가 이 원칙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 역시 이익을 가지기 때문이다. 벤담(Bentham)은 평등한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의 기준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유무로 판단한다. 왜냐하면 공리주의자의 이익은 고통을 피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을 가지기 위해서는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평등하게 배려받아야 한다. 동물 역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에 벤담은 동물의 이익을 무단으로 배제하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이익을 가지는 존재인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평등 개념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이는 동물과 인간을 똑같이 대우해야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동등한 대우(equal treatment)가 아니라 동등한 고려(equal consideration)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의 서로 다른 이익은 서로 다르게, 서로 같은 이익은 서로 같게 취급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 동물은 동물의 본성에 따라 알맞게 대우해주는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동물이 갖지 못하는 자의식, 추상적인 사고,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 의사소통 능력 등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한 이익을 고려하는 행위는 동물에 대한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생명이나 고통과는 관계없다. 생존 욕구와 고통 회피 욕구는 인간과 동물이 공통으로 가진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것과 동물의 것을 다르게 취급한다면 부당한 차별이다.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날 이익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 동물 또한 같은 이익을 가지기 때문에, 동물의 고통에서 벗어날 이익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만약 X와 Y가 동일하게 갖고 있는 이익에 대해 X가 인간이고 Y가 동물이라는 이유로 상이한 비중을 둔다면, 이는 종에 근거한 차별이며 이익 동등 고려 원칙에 어긋난다.

싱어는 이러한 관행이 종차별주의(speciesism)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한다. 종차별주의란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다른 종의 이익을 배척하는 편견 또는 왜곡된 태도이다.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여성해방운동이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흑인해방운동이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동물해방운동과 같은 방식의 논증 구조를 갖는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이점도 있고 유사점도 있는데 여성해방운동은 남녀 사이의 유사점에 초점을 두어 남녀를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차이점과 유사점이 함께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는 차이점에 초점을 두어 다르게 대우하는 방식을 취한다. 같은 구도에 있는 두 집단에 대해 임의로 유사점에 또는 차이점에 기준을 두는 것은 모순이다.

다른 집단의 이익보다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이익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은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왜곡된 태도로 명백한 차별이다.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종차별주의 역시 비도덕적이다.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쾌고감수능력을 가진 존재는 이익을 가진다는 벤담의 의견을 수용하여, 평등을 모든 이익을 가진 존재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면, 이익을 가지는 동물 역시 평등의 고려에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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