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기록의 역사와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실사구시를 표방한 조선 후기 학인들이 고전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동물에 대한 기록도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와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등에서는 자연을 관찰하고 동물을 구조적으로 분류하여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것은 조선 후기 들어 화약과 총기가 보급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인간 우위의 관점이 강화되는 세태를 반영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만 동물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근본이 되는 본성을 알아내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다. 이는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특히 잘 드러나는데, 여기서 그는 짐승에게도 한 가닥의 이치가 있다는 논조의 금수일로(禽獸一路)라는 글을 쓰고 의견(義犬)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동물의 도덕적 본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 호획구(虎攫狗)에서는 지(智)와 성(性)을 구분하고, 성(性)은 천리에 따라 움직이는 데 반해 지(智)는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로 인간이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진다는 당시의 생각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거나 도구로 이용하도록 한 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익은 동물이 가진 타고난 본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세계관이 맹자나 예기와 같은 고전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며 고전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유기적인 상호관계로 바라보고 인간이 자연의 본성을 모두 알아낼 순 없다고 하였다. 경학에서는 자연을 지배나 억압, 통제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경외와 감사의 대상으로 여겼고, 그것은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와 호랑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에 들어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동물을 계층적으로 분류하고 세분화하려는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오늘날 조선시대의 자연관찰기의 계보를 잇는 동물 관련 기록이라면 환경부나 국립수목원, 온라인 백과사전에서 제공하고 있는 생물자원정보가 있다. 이러한 생물자원정보 기록은 동물에 대하여 생물학적 종, 형태적 특성, 진화 역사 등에 따라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접근한다.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유사한 종들을 묶어서 계-문-강-목-과-속-종의 순서로 계층화하고 각 생물에 대한 학명 및 분류체계, 형태, 생태, 분포, 유전정보, 지정관리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동물 기록은 조선 후기의 자연관이나 인문학적 관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가차원에서 생물자원 정보시스템을 구축하여 자료를 보관하는 목적은 국가 차원의 생물자원 보전 관리를 통해 생물 주권을 구현화하고자 하는데 있다. 또한 생물의 육성과 지원기반을 확립하여 국가 경쟁력을 얻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생물자원을 확보하면 생물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생물자원 인식의 제고가 가능하며 관련 전문인력도 양성할 수 있다. 이는 동물을 인간이 보전, 관리하고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하여 활용하는 대상으로서 지배종속의 관계로 인식하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으며, 이익처럼 동물의 본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도 찾아보기 어려워 근세와 현대 사이의 단절을 실감한다. 조선 후기 학자들이 고전에 나와 있는 동물 기록을 통해 자연관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새로운 동물 기록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만약 이러한 생물학적 정보만을 주요한 동물 기록으로 보고 보존·관리할 경우 자칫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양산하고 동물을 인간 중심적으로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을 기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균형 잡힌 자연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생물자원정보 외에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성격의 기록도 규명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동물기록으로 생산되는 기록의 종류는 주제별로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생물학적 정보, 진료기록 및 등록정보, 동물구조 및 보호, 동물권 운동, 동물 이슈, 그리고 동물의 일상과 소통이 그것이다. 생물학적 정보는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등 국가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관리하며 제공하고 있는 기록으로서, 동물을 자원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학명, 분류체계. 서식 장소, 생태 정보와 각 기관이 보유한 표본에 대한 정보 등이 디지털 자료로 생산되며, 동물 사진과 영상, 동물 소리를 담은 오디오 파일도 주요한 기록물이다. 멸종위기 동물의 보호와 생태, 경관보전지역의 지정 및 관리, 국가지정관리 종 등 정책계획 수립 시 이를 활용하고, 이외 연구조사나 교육, 의약품이나 화장품, 신소재 개발 등의 이용목적을 가진다. 진료기록 및 등록정보는 주로 동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위한 기록물로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서 관리되는 등록정보 및 동물병원의 진료기록 등으로 구성된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서 제공하고 있는 농장동물의 사육환경에 대한 정보, 축산농장 인증제도 관련 자료, 실험동물 사용 실태와 매뉴얼, 교육자료, 동물 판매업과 장묘업의 업체 정보 등은 동물복지와 윤리적 사용이라는 이중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또한 유기동물의 발생을 방지하고 반려동물 분실 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반려동물의 등록정보도 주요 기록물에 해당한다. 동물구조 및 보호과정의 기록은 동물보호관리 시스템을 통해 제공되는 유기동물 및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에 대한 공개자료, 사설보호소의 구조, 입양 소식과 봉사 혹은 후원 관련 자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동물 구조와 보호는 정부 차원에서부터 개인 활동가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기록물의 생산 주체가 다양한 편이며, 관리적 목적도 있으나 동물보호 목적의 성격이 강하다. 반려동물의 분실 사고 발생 시 대처와 유기동물의 입양, 봉사, 후원 등을 위해 기록물이 활용된다. 동물권 운동기록은 액티비즘 성격이 강한 기록물로서 주로 최전선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동물권 단체와 개인 활동가들에 의해 생산된다. 동물권 단체에서 배포하는 연구 자료와 정책 제안서, 보도자료, 집회 및 행사 홍보자료, 활동사례 모음집 등이 이에 해당하며 개인 활동가의 인터뷰 자료나 직접 촬영한 사진, 영상, 문서 등도 있을 수 있다. 이용자들은 집회나 민원 제기, 후원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자 이러한 기록물을 활용하며 연구조사나 취재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동물 관련 이슈는 방송사와 신문사, 인터넷 언론, 영화, 도서와 같은 전통 미디어가 생산하고 전달한 기록으로서 이를 통해 우리가 동물에 대하여 어떤 정보와 생각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지를 알 수 있으며 어떤 사건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동물 관련 전시 및 문화공연, 강좌 등에서도 동물 관련 이슈를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생산된다. 이러한 기록물은 여가활동이나 정보 획득의 목적을 지닌다. 동물의 일상과 소통은 미디어에서 다룬 사건이나 이슈에 대한 개인들의 반응이나 해석,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토론 및 소통 과정의 기록으로 블로그나 게시판,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채널이 대상이 된다.